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상륙작전 (문단 편집) === 낙동강 전선의 반격 === || [[파일:inchon_sangryuk_2.jpg|width=100%]] || 인천 상륙작전의 시기에 맞추어 낙동강 전선 일대에서도 대대적인 반격 작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북한군의 두 배가 넘는 병력을 유엔군이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격은 지지부진한 성과만 보였는데, 9월 20일 무렵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에게 알려지자 북한군은 붕괴되고 말았다. 한반도 내부의 육상교통의 중심 겸 집결지인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의 서부가 유엔군에게 장악당했으므로 보급선을 동쪽으로 이동시켜야 했는데, 이는 [[백두대간]]의 험산준령 때문에 거의 불가능했다. 어떤 전쟁이라도 최전선 전투부대의 보급선을 끊으면 승리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설상가상으로 애초부터 북한군의 보급선이 위태로웠다. 유엔군의 폭격으로 인해 기존에 있던 철도수송도 낮에는 열차가 터널 같은데 숨었다가 밤에만 살짝 이루어지고 철도가 파괴되었거나 복구중인 구간은 보급품을 [[소]]와 [[말(동물)|말]], 사람 등에 지우고 운반하던 실정에서 보급로 자체를 애초부터 철도도 없고 도로도 빈약한 쪽으로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그나마 쓸만한 인원이고 우마고 죄다 낙동강 전선에 동원한 상태라 보급쪽에 추가로 동원할 능력이 크게 부족하며 이런 모든 문제를 무시하고 억지로 보급을 한다 해도 아주 잠깐도 버티지 못한다. 우마차와 인력으로 사단급 병력의 보급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임팔 전투]]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낙동강 전선 일대의 북한군 병력들은 2만이 넘는 정도의 병력만이 제대로 후퇴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군 중 12,000여명 정도가 포로가 되었고, 10,000여명이 좀 넘는 정도의 병력은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이 되었으며, 낙동강 일대의 북한군 병력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남한 내에서 강제징집된 인원들은 도망쳐서 원래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작전으로 북한군이 입은 타격은 그냥 '전멸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 뒤는 쭉쭉 밀려날 수 밖에.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은 [[파죽지세]]로 저 멀리 [[압록강]]까지 진격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